어릴 적의 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이야기..

(느루표찐빵님의 이미지입니다.)




어릴적.. 초등학교 3~4학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금이가고..


아버지는 어머님을 매일같이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고, 저와 어린 여동생에겐 매일 집을 나가라고 했었죠.


다행히 집에서 할머니 댁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꽃을 볼 수 있어 좋아했던 여동생의 손을 꼬옥 붙잡고 할머니 댁까지 가곤 했습니다.


할머니 댁을 가는 길에는 남대천이라는 강을 건너게 되는데, 가는 길에 민들레나 강아지 풀 같은게 많았어요.


그래서 가는 길에 동생에게 민들레도 불어주고 그 무슨 하얀 꽃? 같은 걸로 반지도 만들어주고..


용돈이라도 조금 남아 있으면 둘이서 과자도 나눠서 사먹고 했었죠.


하지만 매일같이 행사되는 폭력에 저와 여동생, 어머니는 계속 지쳐갔고 제가 중학생 때에 그게 절정에 달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엔 특히나 더 밤이 싫었어요.


아버지가 그 시간에 술을 드시고 집에 오시는 시간이니까요. 그러면 또 어머님께 술상봐오라고 하고.. 욕하고.. 집안 부수고..


저는 우는 여동생 손 꼬옥 잡고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고..




어느 날, 어머님이 저와 동생을 학교를 데려다 주시고 회사 출근하시는 길에 저에게 넌지시


"XX아, 우리 그냥 죽을까?"


라고 하셨던 말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가슴에 박힌 말입니다. 오죽하셨으면 그 강한 어머님이..


이런 상황은 제가 군대가기 직전까지 이어졌으니 약 15년 가까이 그랬던 것 같네요.




대학생이 됐을 때, 제 고향은 그다지 좋은 대학교가 없어, 고향을 떠나 멀리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거기도 그렇게까지 좋은 학교라 할 순 없지만.. 변명같지만 사실 초중고 시절을 매일같이 도망만 다니다보니 공부할 시간도, 


그럴 정신상태도 안되었던게 컸습니다.


합격한 기쁨이 반, 어머님을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 두려움 반이 섞여서 밤에 잠을 설친 기억도 나구요.


그나마 여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라, 어머님을 잘 부탁한다고 그랬었죠. 저도 매일같이 전화해서 무슨 일이 있지 않았을까 물어보고.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님을 괴롭히시면서도, 제가 고등학생일 때 어머님이 아버지때문에 또 임신을 하셨었더군요.


또 그게 유산되었다는 사실도, 군대를 갔다오고 직장인이 된 한참 후에서나 고모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정말..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또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렇게 고통받으면서도 또 아이를 가지게 된 어머님..


그리고 그걸 또 유산하신 어머님.. 아무것도 모르고 돌봐드리지도 못한 저..


그리고 제 아버지지만 과연 이걸 사람으로 봐야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다 군대를 갔다온 2년 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몰라도 기적적으로 어머님과 아버지 사이가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괴롭힘 당한 저와 여동생은 둘다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걸 하나씩은 달고 살게 되었네요.




저같은 경우는 술이 너무 싫어요. 술만 봐도 무섭고, 술취한 사람을 보는 것도 무섭고 싫고..


그게 이어져서 지금도 술은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술에 입을 대면 내가 똑같은 인간이 될까봐..


할아버지도 술먹고 와서는 행패부리고 할머니 때리고 집안 부수고...


그걸 봐오면서 자라셨을 아버지도 술먹고 와서는 행패부리고 어머니 떄리고 집안 부수고 우리 내쫓고...


그걸 2연속으로 봐온 저는, 좋든 싫은 그 피를 이어받은 놈이 저니까, 저도 술 먹으면 저런 인간만도 못한 놈이 될 지도 모른다는게


가장 두려웠어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내가 변한다면 정말 죽기보다 싫지 않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또 내가 괴롭히기라도 한다고 하면..


덕분에 직장인인 지금, 술자리가 가장 고역이고 강제로라도 먹이려는 상사도 있지만 필사적으로 피하곤 합니다.


이건 제 자신과의 약속이거든요.


대학교 신입생 OT에서도 당당하게 선배앞에서 전 절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었던 적도 있고..




지금은 아버지랑 전화통화 정도는 하는 사이는 되지만, 저는 여전히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가장 괴롭힘을 많이 당하신 어머님은 이미 아버지를 용서하셨다고 합니다. 제 속마음을 아는 어머니는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시지만 저는 잘 안되네요.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아직도 부글부글 끓는게 있으니까..


아버지는 뒤늦게라도 저와 여동생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계시고 그런 점은 감사하기도 하니, 두 마음이 겹쳐서 애매한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여동생과 각각 서울에 상경해서, 저는 6년차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여동생은 임용고시를 준비중입니다.




저는 항상 여동생이 더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릴적부터 여동생은 저 때문에 이것저것 피해를 많이 봤어요.


별거 아니긴 하지만 학용품 같은 것도 다 제가 쓰던거 물려받아 쓰고..


저도 어린나이때긴 하지만, 더 어린나이에, 생긋 웃으며 뛰어다니며 놀아야 할 시기에 동생이 한 거라곤


밤만 되면 또 아버지가 술먹고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떨면서,


제 손 꼭 붙잡고 할머니 댁 가서 울다가 잠들고 했던 기억만 가득합니다.


그나마 머리가 컸었던 내가 다른 대처를 했으면 동생이 조금 더 행복하게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 때문인지 여동생이랑 참 사이는 좋습니다. 예전 연인은 제가 양다리라도 걸친 줄 알기도 했을 정도로;;




이제 20대 후반인 여동생, 그리고 저는 30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가끔 서로 어릴적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항상 둘이 의지하며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이렇게 바르게 나가고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글이 너무 두서가 없는데..

(리뷰같은거 쓸 땐 자료라도 준비해놓고 쓰는데 이건.. ㅎㅎ)


저는 제 어머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세상에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에요. 박학다식하셔서 지금의 저에게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거든요.


그리고 어릴 적 그런 상황에서도 바르게 커준 우리 여동생도 너무 고맙구요.


전 신을 그다지 믿지 않지만, 있다고 한다면 우리 여동생 잘 되게 해달라고 빌어봅니다.


저에게 주어질 복도 그냥 다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동생은 어여쁘신 우리 어머님 닮아 또 예쁜 아이라서,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 수 있게..


저는 뭐 아버지 닮아가지고..ㅋㅋ




그리고 저.. 초등학교때부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잘 견뎌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난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를 되뇌이며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잘하고 있으니 너도 여기까지 와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잘하고 있으니까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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